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Sacred 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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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내 책((아직도 기술적으로는 계약이 유효한 상태이긴 합니다만…)) 을 담당하고 계셨던 분이 아직 김영사에 계실 적에 곧 출간될 ‘신성한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책에 대해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나도 당시 실비오 게젤의 책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게 하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하고 있었던 터라((번역 계약도 맺고 초고와 재고를 넘겼는데 그 이후로 해당 출판사 관계자와 연락이 끊겼다…))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근래에는 우리나라 출판 시장 현황에 관심이 별로 없다 보니 출간이 되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고 그대로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라는 책이 언급되는 것을 보았다. 아, 벌써 올해 초에 출간이 되었구나. 마침 도서 리뷰 방송을 시작하게 된 터라 이 책도 리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리뷰할 책들이 많았지만 이 책만큼은 꽤 열심히 읽었다.

저자 찰스 아이젠스테인은 헨리 조지와 실비오 게젤((일전에 게젤의 경제학 사상에 대해 개괄하는 글을 썼다))과 같은 경제학의 매버릭maverick들의 유산을 잘 계승하여 새로운 시대의 경제를 잘 구상했다. 전자화폐가 일상화되는 시대야말로 게젤의 ‘감가상각되는 화폐’ 개념을 가장 손쉽게 구사할 수 있는 때가 될 것이다.

경제학 이단의 전통(?)을 잘 계승한 것만이 이 책의 덕목은 아니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저성장이 일상화될수록 다시 인류의 삶에서 비경제 부문의 비중이 커지리라는, 다시 말해 경제에서 인간성이 회복되리라는 저자의 전망이었다. ‘선물 경제’로 대표되는 공동체 내 교류가 화폐 거래(즉, 경제)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인간성이 퇴락되었다는 이야기야 이미 여러 차례 회자되어 왔지만, 저성장이 다시 인간성의 회복을 가져오리라는 전망은 무척 신선했다.

실비오 게젤조차도 자신이 제안한 자유화폐freigeld 개념이 자유시장경제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꾸준히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었다. 저자는 이를 20세기 초의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라 말한다. 모든 경제학자들이 다가오는 만성적 저성장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저자는 다시 경제에서 인성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은 기대를 숨길 수 없다. 어쨌든 내 생전에 어떠한 결론으로 이어질지 볼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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