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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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언론은 너무 변화가 더디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해외에서 버즈피드나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같은 신생 언론은 물론이고 NYT이니 가디언과 같은 기성 매체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는 모습들을 볼수록 그러한 불만은 더욱 커진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답답한 일이다.

국내 기성 언론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만족도도 그리 높은 것 같아 뵈지는 않는다. ‘기레기’라는 신조어는 기사 댓글란의 단골 메뉴다.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면 시장은 그에 따라 반응해야 하는 것 아닐까?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다. 말 끝마다 시장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많이 보이는데 이 나라에서 시장의 원리가 제대로 적용되어 돌아가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독자가 소비자라고는 하지만, 실상 언론(보다 포괄적으로는, 매체) 시장의 소비자는 온전히 독자라고 보기 어렵다. 수익모델에서 독자가 내는 구독료(subscription)보다 광고주들로부터 받는 광고비의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은 기본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매체에 자신들의 광고를 싣길 원하며, 그래서 오늘도 주거지 근처에서는 배급소 아저씨들이 현찰 5만원을 펄럭이면서 아줌마들을 낚아 조중동 1년, 그게 안 되면 6개월 구독이라도 따내기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 광고비 보다 독자들에게 받는 구독료의 비중을 높이고, 심지어는 광고를 버리고 온전히 구독료만으로 수익구조를 만드려는 시도가 종종 보였다. 미국의 유명 블로거인 앤드류 설리번의 The Dish가 그런 사례이다. 혹자는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야말로 언론의 본질에 보다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도는 장려되어야 하며 나도 그런 가능성을 결코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한번도 우리에게 구독료만으로 긴 시간 존속한 언론을 보여준 적이 없으며 언론의 수익구조에서 역사적으로 광고의 비중이 구독료보다 더 작았던 적 또한 없었다 (NYT의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 광고주의 이해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순전히 독립적인 언론의 이상은 물론 찬탄할 만한 것이지만 그것이 원래 그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경우보다 더욱 광고에 대한 수익모델의 의존이 큰 우리나라에서, 언론 시장 변화의 단초는 아무래도 광고 시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언론의 수익구조를 떠받치는 것은 광고이니까. 항상 새로운 트렌드를 쫓는 광고업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광고 시장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광고 시장도 언론 시장 못지 않게 변화를 찾기 어렵다 한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 들려면 우리나라 시장 전반에 만연해 있는 독과점 구조를 파헤쳐야 할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수퍼볼 광고에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했다는 게 뉴스가 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런 소식을 찾을 수가 없다. 어차피 시장이 독과점인데 굳이 광고에 그런 돈을 쓸 필요가 없다.

이러한 시장 구조에서 (대)기업의 홍보 부서의 주요 업무는 (주요)언론 관리하기가 된다. ‘홍보’에서 Public Relation은 찾기 힘들고 Media Relation(그리고 Government Relation)만 득실댄다. 언론과 광고, 그리고 산업에 만연한 독과점 체제가 서로 결탁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언론이 자기 시장(생산자-소비자 관계) 내에서 자정 또는 변화하기란 불가능하다. 언론의 돈줄, 목줄은 광고에서 나온다. 언론 시장을 교란시키려면 광고 시장에서의 교란이 필요하다. 산업에서의 교란과 함께. 독과점 시장에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우리나라 광고 시장에서의 교란 가능성을 탐색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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