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구독자 1만을 바라보던 건강 유튜버였던 나(이 블로그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유튜브는 더는 하지 않지만 지금도 건강 관련 정보들은 열심히 습득한다.

최근 1~2년 새에 서구권에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제로드롭zero-drop 또는 베어풋barefoot 슈즈다.

barefoot

제로 드롭과 베어풋 슈즈란 무엇인가?

현대적인 신발의 설계 경향과는 달리, 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제로 드롭이란 신발의 뒤꿈치와 발가락 부분의 높이 차이(drop)가 없는, 즉 밑창 전체가 평평한 구조를 의미한다. 이는 대부분의 신발이 충격 흡수를 위해 뒤꿈치 부분을 더 높게 만드는 것과 대조된다.

베어풋 슈즈는 제로 드롭을 기본 전제로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특징을 갖는다:

  • 넓은 토박스toe box: 발가락이 본래의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펴질 수 있도록 신발 앞부분의 공간이 넓게 설계된다.
  • 얇고 유연한 밑창: 지면의 정보를 발바닥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밑창이 얇고, 발의 어떤 움직임에도 유연하게 구부러진다.
  • 최소한의 지지 구조: 인위적인 아치 지지대나 뒤꿈치를 고정하는 구조물을 배제하여, 발 자체의 근육과 구조가 몸을 지지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뭐가 좋다는 거예요?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인체에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1. 신체 정렬 및 보행 자세 변화 유도

일반적인 신발의 높은 뒤꿈치(heel drop)는 신체의 무게 중심을 전방으로 이동시킨다. 이에 대한 보상 작용으로 무릎과 고관절이 미세하게 구부러지고 골반이 틀어지며 허리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제로 드롭 슈즈는 신체를 지면과 수직에 가깝게 정렬시켜 불필요한 자세 보상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뒤꿈치로 강하게 지면을 찍는 보행 습관(heel strike)을 발 중앙부나 앞부분으로 부드럽게 착지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여 관절의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2. 발 및 하체 근육의 기능적 강화

과도한 쿠션과 견고한 지지 구조를 갖춘 신발은 발이 수행해야 할 충격 흡수 및 지지 기능을 상당 부분 대신한다. 이는 발의 내재근(intrinsic muscles) 및 아치 구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베어풋 슈즈는 발이 지면의 충격에 스스로 대응하고 균형을 잡게 만들어, 발과 발목, 종아리에 이르는 근육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단련시킨다. 강화된 발은 그 자체가 안정적인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3. 고유수용성감각의 향상

발바닥에는 지면의 상태와 신체의 위치를 뇌에 전달하는 신경 수용체가 밀집해 있다. 두꺼운 밑창은 이러한 감각의 전달을 방해한다. 베어풋 슈즈의 얇은 밑창은 발이 지면의 다양한 정보를 민감하게 수용하도록 하여 고유수용성감각proprioception을 활성화한다. 이는 신체의 균형 감각과 환경에 대한 반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4. 발가락의 자연스러운 형태 유지

좁은 신발은 발가락을 압박하여 무지외반증과 같은 족부 변형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베어풋 슈즈의 넓은 토박스는 발가락이 눌리거나 포개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 발의 본래 형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돕는다.

토박스를 압박하는 신발을 신으면 금방 정강이와 무릎쪽에 통증이 오는 경험을 과거에 몇 차례 한 적이 있어 늘 현대적인 신발 구조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베어풋 슈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첫 베어풋 슈즈 구입

하지만 기존 신발에 오래 적응된 상태에서 준비 없이 베어풋 슈즈로 전환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약화된 발 근육과 짧아진 아킬레스건 등에 무리가 가해져 오히려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베어풋 슈즈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은 꽤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시착을 해볼 수 있는 곳은 찾지 못했다.1

가장 널리 알려진 베어풋 슈즈 브랜드는 비보베어풋Vivobarefoot으로 국내에도 온라인 판매처가 있긴 하지만 시착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켤레에 20만원 정도 하는 걸 선뜻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작년에 일본 여행 중에 인구 1억의 일본 시장에는 오프라인 매장이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니 때마침 교토에 매장이 있음을 알게 됐다.

Vivobarefoot Kyoto store

Vivobarefoot shoes we bought

사실 적응에 시간이 꽤 걸리고 아플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좀 걱정했는데 처음 신은 그 순간부터 너무 편했다. 그래서 사자마자 그거 신고 교토 시내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더 저렴한 건 없을까?

적응도 금방 되었고 훨씬 편한 걸 느끼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이제 일상에서 신는 모든 신발을 베어풋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비보베어풋은 그러기에는 가격대가 조금 있었다.

분명 가성비 좋은 중국산이 있을 터. 처음에는 바로 알리익스프레스로 향했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제품이 너무 많아 옥석을 가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분명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극강의 가성비 제품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차라리 조금 더 비싸더라도 이미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제품을 골라 구입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 아마존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마존 남바완인 WHITIN을 알게 됐다. 괜찮은 품질에 가격은 30~40달러 정도(가끔 세일하면 20달러 수준까지 간다)라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었다. 베어풋 슈즈에 관심은 있는데 시착할 기회가 없어서 저어되는 분들이라면 여기 제품을 한번 구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관건은 사이즈. 구조가 일반 신발과 좀 다르다 보니까 일반 신발 사이즈에 맞춰서 구입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신은 상태에서 발가락을 넓게 펴는 게 가능해야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발길이를 먼저 보고 그에 해당하는 것보다 한 사이즈 더 크게 구입해 신어보길 권한다. 아마존 제품 페이지의 size chart를 잘 살펴볼 것.

보기에는 어때요?

나중에 WHITIN에서 스웨이드 재질로 만든 스니커즈도 있길래 사봤는데 마음에 들어서 외출용으로 종종 신는다.

WHITIN swede shoes

그런데 아마존 리뷰를 보면 토박스가 넓으니까 광대 신발 같다는 미국인들의 평이 종종 보인다. 나는 남자치고도 발이 작아 250mm인데 이 정도에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토박스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발 사이즈가 크면 아무래도 토박스가 좀 더 두드러질 것 같긴 하다.


처음에 광대 신발 같다는 리뷰 보고 한참을 웃었다 ㅋㅋㅋㅋㅋ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좋을 듯

베어풋 슈즈를 꽤 신어보고 나니, 웨이트 트레이닝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사실 드롭이나 바닥 쿠션이 높은 신발을 신으면 제대로 스쿼트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스쿼트 자세를 위해서는 발바닥의 볼 양쪽 끝과 힐의 세 개 지점에 동일하게 체중이 분산되어야 하는데 이게 일반 신발로는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스쿼트에 진심이거나 자세 교정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맨발로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맨발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베어풋 슈즈가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다.

정장에도 신을 수 있을까?

그래서 베어풋 슈즈를 사고 나서 집에 있던 올버즈 신발 등등을 모두 버렸다. 이제 기존의 신발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키높이 신발 중요시하는 한동훈 같은 사람들은 못 신겠지만 난 건강 제일주의이므로…)

그런데 정장을 입을 일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아직도 정장에 스니커즈를 극혐하는 사람이라 이 부분이 좀 마음에 걸렸는데 웬걸, 미국에는 이미 드레스 슈즈도 베어풋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찾은 브랜드는 BirchburyCarets인데 상당히 포멀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제로드롭에 베어풋을 실현했다. 그래서 구두도 옛날에 노스햄튼에서 직접 구입했던 크로켓 앤 존스 빼고는 마음 편히 다 버렸다 ㅋㅋ (아직 새로 구입은 안 함)

  1. 옛날에 찾아봤던 거라 지금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혹시 국내에 시착 가능한 곳 보셨으면 알려주세요. 이 글에도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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