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청정기로 안 되는 ‘이산화탄소’ 문제: 전열교환기 vs 창문형 환기청정기, 우리 집에 맞는 선택은? (전열교환기 문제점, 퓨어싱크 후기)
미세먼지 문제로 공기청정기가 가정 필수템이 됐던 시절이 있었다. 구독자 1만을 바라보았던(계속 강조ㅋ) 건강 유튜버는 그 시절부터 그 다음 필수템은 ‘환기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왜 환기가 중요한가요?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깨끗한 것도 중요하지만 실내 공기를 논할 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산화탄소 농도다.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 이상이 되면 졸음을 느끼게 되고 1,400ppm 이상이 되면 인지능력이 5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미세먼지가 심하더라도 환기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얼마나 주기적으로 환기를 해야 하는데요?
각자 사는 곳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는 집에 환기가 잘되는지 등등… 그래서 ‘측정’이 필요하다.
시중에 여러 종류의 CO2 측정기가 있는데 비분산 적외선 센서(NDIR) 방식이 그나마 신뢰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여러 곳에서 추천하는 SAF Aranet4를 구입했다. 대략 25만 원이니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NDIR 센서는 거의 다 이 정도 가격대다.)
사이즈가 일반적인 온습도계랑 비슷하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꽤 머무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측정을 할 수 있다. 블루투스로 폰과 연결해서 측정 결과를 다운받을 수도 있다.
내가 측정기를 구입하고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과연 내 방은 폐쇄된 상태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CO2 ‘위험’ 수준에 다다르는지 측정한 것이었다. 측정해 보니 한국의 일반적인 아파트 베드룸 사이즈에서 성인 남성 1명이 숨쉬고 있으면 보통 1시간 내에 1,400ppm을 초과하게 된다. (Aranet4에는 1,400ppm을 초과하면 경고음을 울리는 기능도 있다.)
15분 정도 환기를 하면 6~700ppm 정도로 떨어졌다. (보통 야외의 농도가 450ppm이다.) 그러나 이는 봄/초여름 날씨에 한한 것이고 한여름이나 겨울에는 따로 측정해야 할 것이다. (보통 바깥 기온이 낮으면 더 빨리 환기가 되는 편이다.)
창문을 열어도 맞바람이 치지 않는 가정에서는 보네이도 등을 사용해 강제 환기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럼 창문만 잘 열어두면 되는 거 아니에요?
창문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창문을 열어두기는 어렵다.
한반도의 기후는 상시 환기에 적합하지 않다. 여름과 겨울에는 실내온도 유지를 위해 CO2 농도를 측정하면서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켜야 한다.
문제는 수면시다. 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 주기적으로 환기를 하면 되는데 자고 있을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여름이나 겨울이 아닐 때는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외부 소음과 빛 등에 노출된다는 것이 숙면에 좋은 조건은 아니다. (수면시에는 소음 뿐만 아니라 모든 빛을 차단하는 게 좋다. 암막 커튼은 필수이고 각종 전자기기의 LED도 끄거나 테이프 등으로 막아버리는 게 좋다.)
실내 CO2 농도는 수면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1,000ppm이 넘어가면 수면 중간에 깨는 시간이 늘어나는 등으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다음날의 인지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환기를 따로 하지 않고 잠을 잘 경우, 실내 CO2 지수는 상당히 높이 올라간다.

(좀 더 날이 쌀쌀했던 시기에는 자고 일어나서 CO2 측정기를 봤더니 거의 3,000ppm에 육박해서 기겁한 적도 있다.)
우리집엔 환기시스템이 있는데요?
사실 2006년 이후에 준공된 아파트는 전열교환기 설치가 의무다. 당시 라돈 가스가 이슈가 되면서 법제화를 시킨 것이다.
우리집도 2006년 이후에 준공된 아파트라 전열교환기가 설치돼 있었고 이사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이 전열교환기를 열어보는 것이었다. (늘 환기시스템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데 교환기의 철제 뚜껑에 너무 심하게 녹이 슬어 있어 나사가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제조업체 A/S를 요청했는데 수리기사가 수리가 거의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대부분 전열교환기가 에어컨 실외기실에 설치되는데 여기는 단열 처리가 거의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심한 온도차로 전열교환기 안에 습기가 차기 일쑤고 그래서 곰팡이와 녹이 잘 슨다는 것이다. 내부의 필터 등등을 교체하더라도 또다시 한 해가 지나면 같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권하지 않는단다.
그때 나는 대한민국에 절망했다. 법제화는 정책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실제 산업 분야에서 그 법률이 의도대로 잘 구현될 수 있도록 각종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데 법안만 만들어 놓고 일을 더 하지 않으니 문제는 해결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곰팡이 배양기를 만들어 보급한 꼴이다. (곰팡이 독소는 미세먼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롭다.)
그래서 나는 전열교환기 전원을 끊고 방 곳곳의 디퓨저를 막아버렸다. 요즘 신축 아파트에 설치하는 전열교환기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한 솔루션을 시공하는 업체들이 있기는 하다. (돈만 있었으면 여기에 시공을 맡기고 싶었다.) 문제는 비용. 기존 배관(덕트)을 모두 교체하면서 설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천장을 들어내야 하고, 결국 인테리어 새로 하는 수준의 공정이 들어가게 된다. 어차피 천장을 들어내면 비용이 확 늘어나니—예전에 대강 파악한 바로는 천장을 들어내는 순간 1000만원은 넘어간다고 봐야한다—그럼 이참에 시스템 에어컨도 달고… 인테리어도 싹 바꿔봐…? 그렇게 아반떼 사러갔다가 롤스로이스 출고하는 것이다.
게다가 2006년 이전 구축 아파트는 덕트를 놓을 천장 공간부터가 없다.
절충안: 창문형 환기시스템
일단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 환기는 필수다. 인지능력과 수면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 보통의 경우, 창문만 잘 열어도 되지만 잘 때는 기계적 환기가 필요하다. 자다가 1시간 마다 일어나서 창문을 15분간 열 수 있다면 몰라도.
- 아파트에 전열교환기가 설치가 되어 있어도 무용지물(심지어 더 해로울 수도)인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걸 설치하려면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편익을 얻기 위해서는 잠을 자는 방에만 환기시스템을 설치하면 된다. 그래서 창문형 환기시스템을 알아보게 됐다.
시중에 생각보다 많은 제품들이 있었는데 국산 제품인 퓨어싱크를 구입했다. 디자인적으로도 가장 괜찮았기도 해서.
창문에 추가로 틀을 달아서 설치하는 것이라 창문 틈을 통해 외부 공기가 새어들어오기 쉬운데 그걸 막기 위해 다양한 소품을 제공해서 확실히 국산이라 낫다 싶었다. (예전에 산 TCL 이동식 에어컨은 창호 기밀성 제공을 위한 별다른 소품이 없어서 틀 사이로 바람이 숭숭 새는 게 느껴지곤 한다.)
실제로 효과는 어떨까? 일반 아파트 마스터 베드룸(안방) 사이즈에서 몇 가지 조건을 바꾸어가며 수면 중에 운행을 해봤다:



쾌속 모드로 돌려도 750ppm 미만으로 떨어지진 않았다. 흡기와 배기를 하는 공간이 좁고 창틀에 가려지기 쉬워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같다.
쾌속 모드로 돌리면 소음이 꽤 거슬리는 수준. 에코 모드는 조용하긴 하지만 환기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아직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앞으로 여러 환경에서 테스트를 더 해봐야 할 것이다. 사실 환기시스템이 가장 절실해지는 때는 한겨울인데 그때는 과연 어느 정도의 효율을 보여줄 수 있을지 조금 걱정스럽긴 하다.
(조금 때이른) 창문형 환기청정기 총평: 여러모로 창문형 에어컨과 비슷
창문형 환기시스템은 창문형 에어컨과 장점과 단점을 공유한다:
- 완전한 환기시스템(전열교환기)에 대한 저렴한 대안이나,
- 완전한 전열교환기에 비해 환기 효율이 떨어지고 소음이 크다.
그렇다면 창문형 환기시스템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 2006년 이전 준공한 구축 아파트의 경우에는 창문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봐야 한다.
- 2006년 이후 준공으로 기존 환기시스템(전열교환기)이 있는 경우에는 집에서 잠을 자는 가구 구성원의 수에 맞춰 고려를 해봐야 할 것이다.
- 가구원이 잠을 자는 방이 하나인 경우에는 창문형이 가성비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50만원 미만의 중국산 제품들의 존재를 고려할 때 100만원대의 퓨어싱크가 과연 2배 가격의 값어치를 하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히 모르겠다. 퓨어싱크가 전열교환기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기 때문에 겨울이 되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듯.
- 잠을 자는 방이 두 개 이상인 경우에는 전열교환기 교체 견적도 내보는 게 좋겠다.
- 국내 업체 중 SSK의 경우 기존 배관을 교체하지 않고 (청소만으로도 확실하게 곰팡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열교환기를 자사 제품으로 교체하는 옵션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교체비용이 500만원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시절 SSK에 전화해서 문의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 창문형(퓨어싱크)이 100만원 가량하니 설치해야 하는 방이 두 개 이상이면 장기적으로 SSK의 솔루션을 택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 참고: 전열교환기 환기시스템은 설치하면 24시간 계속 돌려주는 것이 배관 내에 먼지 등이 축적되는 걸 최대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 가구원이 잠을 자는 방이 하나인 경우에는 창문형이 가성비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