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브룩스의 최근 타일러 코웬 팟캐스트 출연분도 역시 재미있다. 윌리엄 버클리와의 이야기는 이미 거의 아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본인피셜로 들으니 더욱 재밌고, 버클리도 역시 대단한 양반이다 싶고.

그밖에 재미있게 들었던 대목들:

네오콘의 기원

제게 네오콘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자란 경향이 있고, 보통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들이었죠. 주로 시티 칼리지 오브 뉴욕을 다녔고요.

그 시절 시티 칼리지에서는 다들 마르크스주의자였는데, 그중에는 좀 덜 똑똑한 마르크스주의자인 스탈린주의자들이 있었고, 더 똑똑한 마르크스주의자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구내식당에서도 서로 다른 칸막이 공간에서 밥을 먹었죠.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더 똑똑했기 때문에, 스탈린주의자들이 한 가지 똑똑한 행동을 했는데, 바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이랑은 말도 섞지 마라”고 한 거였어요.

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전부, 아니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네오콘이 된 거죠. 어빙 크리스톨이 있었고, 대니얼 벨이나 네이선 글레이저 같은 사람들이요. 제가 주목했던 그룹이 바로 그들이었죠. 그 사람들은 저처럼 뉴딜 정책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1960년대에 미국 문화가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봤어요. 자신들의 이민자 부모 세대가 속해 있던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반항, 그리고 신좌파를 형성했던 버릇없는 부잣집 자식들 때문에요. 그래서 ‘위대한 사회’의 일부 사회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고 보면서 의심하게 된 거죠.

저는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이 거의 다 옳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는, 사회를 분석하려면—좀 위험한 일일지라도—그 사회의 도덕적 기틀을 기꺼이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이에요.

인간은 미학적인 인식 행위로 결심을 한다

저는 데이비드 흄의 유명한 말,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라고 믿어요. 우리의 열정이 이성적인 정신보다 더 현명하고, 우리의 감정은 잘 훈련되기만 하면 훨씬 더 유연하고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좀 희화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성주의 경제학파는 세상을 보고, 그저 바라보는 단순한 과정을 거쳐, 세상에 대한 비용과 편익을 따진 다음,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사고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고 믿지 않아요.

저는 인식하는 행위 자체가 생각의 90%를 차지한다고 봐요. 우리가 어떤 도덕적 행위를 보든, 슈퍼마켓 선반 위의 상품을 보든, 다른 사람을 보든, 우리는 그 이후의 모든 사고 과정을 결정하게 될 빠르고 미학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요즘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현상학자인 겁니다. 정신 활동의 대부분이 바로 인식이니까요. 지난번 팟캐스트에 지휘자 한 분(데이빗 로버트슨)이 나오셨잖아요.

그분이 팟캐스트에서 언급했던 것 중 하나가, 믹스테이프를 만들어서 AC/DC, 스프링스틴, 베를리오즈 같은 온갖 종류의 음악을 2.5초 단위로 엮어 놓았더니, 사람들이 즉시 “이건 내 취향이야. 이건 아니야.” 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는 거였어요. 저는 차 라디오에 대고 소리치고 싶더라고요. “왜 2.5초죠? 0.5초도 아니고?”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거든요. 제게는, 그 미학적인 인식 감각이야말로 경제적인 상황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사회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저는 우리의 핵심 문제가 사회학적, 문화적, 심리적, 그리고 도덕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만약 핵심적인 문제에 기여하고 싶다면, 사회적 신뢰를 재건하는 것, 그걸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 엄청난 기여가 될 겁니다.

국가들이 어떻게 회복하는지 보면요, 하버드대의 로버트 퍼트남 교수가 미국이 회복했던 한 시기, 1880년에서 1910년 사이를 연구한 게 있습니다. 당시의 회복은 세 단계를 거쳤어요. 첫째, 문화적 부흥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서로를 밀어내던 사회진화론이 더 공동체적인 사회복음 운동으로 대체되었죠.

그 뒤를 이은 것이 시민 사회의 부흥이었습니다. 1890년대에 ‘보이스 앤 걸스 클럽’, ‘시에라 클럽’, NAACP(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 노동조합 운동, 금주 운동, ‘세틀먼트 하우스’ 운동 같은 것들이 생겨났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진 조직들은 전부 사람들이 캔자스 대초원에 살던 시절에 맞춰져 있는데, 지금은 볼티모어, 클리블랜드, 시카고 같은 도시에 아이들이 수백만 명이나 있으니, 시민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한 거예요. 그래서 시민 사회의 부흥이 일어난 거죠.

그리고 그다음이 진보주의 운동이었는데, 정부를 개혁하고, FDA(식품의약국)를 만들고, 결국에는 연방준비제도까지 만들었죠. 제 생각에, 국가의 재탄생을 위해 일하고 싶다면 이 기본 모델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와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믿고, 우리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그리는 문화적인 부분에 기여할 수도 있고요.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시민 사회 자본을 만드는 시민적인 부분에 기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정치 개혁 부분에 기여할 수도 있는 거죠.

정치 개혁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제가 대학 시절 이후로 안 읽었던 리처드 호프스태터라는 위대한 역사학자의 『개혁의 시대』라는 책을 다시 읽어봤는데요.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지금 우리는 포퓰리즘, 즉 도널드 트럼프는 이쪽에 있고, 진보주의와 AOC는 저쪽에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1870년부터 1917년까지, 진보적 포퓰리스트들은 하나의 운동이었습니다.

제 생각엔 진보주의자들은 ‘진짜 미국’과 계속 소통하기 위해 포퓰리스트들이 필요하고, 포퓰리스트들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좀 더 세련되어지기 위해 진보주의자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반은 J.D. 밴스나 조시 홀리 같고, 반은 AOC 같은 운동이 있었다면 아주 유용했을 겁니다. 정말 흥미로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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