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기업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공군 장교로 복무 중에 패트리어트 운용 교육을 받게 되면서였다. 당시 갓 도입을 시작한 체계라 국내에는 이를 교육시킬 자원이 없었기 때문에 제조사인 레이시언(이젠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제품명 같은 RTX로 사명을 바꿨다)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방산기업의 존재를 가장 가까이 겪어봤던 경험이라 무척 인상적이었다.

레이시언 직원들은 대부분 미군 출신이었다. 그 중 한 분은 전설의 나이키 오발 사고 때 수원 기지에서 복무 중이었다고 해 그 사건 이야기를 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미군 패트리어트 레이더로 나이키 미사일 항적을 포착했는데 나중에 장비에 남아있는 로그를 살펴보니 그렇게 오래된 미사일이었음에도 제원상 최고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며 ‘나이키 짱’을 외쳤던 빌 성님… 지금 생각해보면 넥스원 창정비의 승리 아니었을까 싶다.)

전역하고 나서 방산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다른 것보다 돈을 많이 주길래 그랬다. 레이시언 직원들과 대화 중에 우연히 한 사람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를 내뱉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부사관들이(당시는 패트리어트 운영 최초 교육이라 장교와 부사관이 함께 이수했다) 원천소득을 역산해냈던 것이다.

나중에 팔자에도 없던 기자 일을, 그것도 군사 분야를 주로 다루게 되면서 방산도 종종 들여다 보게 됐다. 그때 취재했던 사건들(K-2 파워팩 등등)은 한국 방산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015년, 삼성이 한화에게 방산 부문을 넘겼을 때 나는 삼성이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이제 미국이 서구 안보를 하드캐리하던 시대는 끝났고 그런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반도체도 예전같지 않은 이 시점에 방산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으려나?

영문 자료를 주로 읽다 보면 국문으로 된 자료(특히 웹에서)를 불신하게 되는 일이 많다. 이를 사대주의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 실제로 국문 자료의 질이 동일한 주제의 영문 자료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장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군사 부문은 더더욱 국문 자료를 불신하게 되는데 과거에는 밀덕 커뮤니티에서 잘못된 정보를 자기네들끼리 확대 재생산하거나 예비역 퇴역 아저씨들이 최신 정보가 하나도 업데이트 안 된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고,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각종 국뽕 컨텐츠가 쏟아지면서 그렇다. 뭔가 흥미로운 내용을 국문으로 접했을 때 곧바로 같은 내용의 영문 자료를 찾아보는 습관이 내게만 있는 건 아닐 테다.

그렇지만 한국의 밀덕들 중에도 꼼꼼하게 자료를 체크하고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는 이들이 있고 ‘K-방산에 투자하라’의 저자 김민석도 그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도 오래 전부터 교류를 했기 때문에 그가 산업계 사람들과도 연이 깊은 걸 알고 있어, 국문 자료를 읽을 때면 흔히 드는 ‘이거 정말 맞는 이야긴가?’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육해공 모든 부문의 체계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년 넘는 덕질의 내공으로 결코 하나 하나 다루는 내용이 얄팍하지 않다. (456페이지의 분량도 결코 적지 않다.)

일례로 아래와 같은 대목은 짧게 지나가는 것 같아 보여도 앞으로 수출 등의 산업 가능성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인항공기와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의 경우 MTCR, 즉 ‘미사일기술 통제체제’의 규제를 받는 데 비해 USV와 UUV에 대해서는 이런 기술통제가 적기 때문에 해상 작전에서 특히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p.287)

K-방산에 투자하라 책 커버

그래서 K-방산에 투자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난 하지 않았다. 첫째로는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가 개판이기 때문이고 (이번에 한화가 또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둘째로는 방산은 모든 게 결국 정부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유력한 방산 수출 대상국들이 대부분 한국 정부 외교가 공들이던 곳들과는 다른 곳들이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방산 수출을 만드려면 그동안의 기회주의적 외교와는 사뭇 다른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데 앞으로의 어떤 정권도 그만한 도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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