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에선 새로운 천안문 운동을 볼 수 없을까
그러나 풀뿌리 민주화 운동의 부재에 대한 더 미묘하지만 똑같이 강력한 설명이 있다. 이는 바로 공동체 자체의 본질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데릭 톰슨의 “반사회적 세기”나 마크 던켈만의 “인간관계의 실종된 중간 고리”와 같은 최근의 분석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 사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역학 관계를 조명한다.
전통적인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은 이웃, 동료, 학우와 같이 친밀하지는 않지만 낯익은 관계, 즉 중간 고리 관계의 촘촘한 네트워크에 의존했다. 이러한 유대감은 사회적 결속과 시민 참여를 창출했고, 물리적인 모임, 불만의 공유, 그리고 신뢰에 기반한 조직화를 가능하게 했다.
천안문 운동의 중추는 베이징의 대학생들이었고, 노동자들이 이에 가세하며 시위가 다른 도시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단일한 조직이 아니었으나, 학우, 총학생회 동료, 기숙사 지인, 그리고 캠퍼스를 넘어선 동료라는 중간 고리 관계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단체 영화 관람, 뉴스 공동 시청, 대학 전체 체육 대회와 같이 물리적인 중간 고리 모임이 훨씬 더 보편적이었고 영향력도 컸다. 대규모 토론은 직접 대면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물리적인 모임과 비교할 때, 온라인 소통은 감정적 전염, 공유된 열정, 신뢰 기반의 협력, 집단적 자신감(다수로부터 오는 안전감), 그리고 수평적 연대를 생성하는 데 있어 훨씬 부족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로 공유된 불만을 집단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필수 조건이다. 중간 고리 관계는 “학우나 동료가 가면 나도 갈 것이다” 또는 “이웃집 아들이 시위에 참여한다면 그다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이 집단 행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 수준을 형성한다.
오늘날, 그 중간 고리는 약화되고 있다. 디지털 생활은 내부 집단(개인적 대화를 통한 가까운 친구 및 가족)과 외부 집단(이념이나 취미로 뭉친 가상 그룹)을 선호한다. 그러나 마을 광장, 공개 토론장, 교실,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중간 고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 생활이 파편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감시까지 받는 중국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침식이 더욱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원격, 스마트폰 기반, 그리고 화면 중심의 문화는 개인을 원자화시켰다. 사람들은 근접성이나 공유된 시민 생활이 아닌, 알고리즘 논리와 이념적 반향실에 의해 형성된 신중하게 선별된 디지털 버블 안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민주적 변화를 위한 운동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관용, 연대, 그리고 상호 책임감을 기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Yang Jianli, Why China Hasn’t Seen Another Tiananmen Movement
(한국의 사례는 반론이 되기 어렵다. 그 결과가 과연 어땠나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