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미국이 이제 민주주의 유럽보다 러시아를 선호한다면, 그 정확한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이론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러시아의 기독교 민족주의에 끌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도널드 트럼프보다는 광범위한 마가(MAGA) 운동에 더 해당되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추상적인 아이디어, 하물며 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추측은 지정학적인 것으로, 그가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일관되게 반중(反中) 성향인 것도 아니다. 그는 엔비디아가 중국에 H200 칩을 수출하도록 허용했다. 그는 조 바이든보다 대만 방어 여부에 대해 훨씬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럽 관련 내용에 대한 소란 속에서, ‘국가안보전략’이 중국에 대해 보인 온건함은 묻혀버렸다. 트럼프는 미중 경쟁을 전략적, 심지어 문명적 차원의 대결로 보는 참모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무역 관계에만 편협하게 집착하고 있다.

좀 더 세속적인 설명을 고려해 보자. 트럼프는 ‘상업적 동물commercial animal‘이다. 그의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상업적 동물’이란 단순히 밋 롬니 상원의원처럼 민간 부문 출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전 세상을 비즈니스 렌즈로 바라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를 이해하면 러시아 편향이 말이 된다. 우선, 크렘린에 우호적인 평화가 신속히 이루어지면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에서 돈을 벌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위트코프 특사는 지난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대러시아’를 칭송하는 사람은 진심이 아니거나, 약간은 진심일지 몰라도 모두에게 이익이 있다면 무슨 대수냐는 식이다. 겉보기에 이런 태도는 세상 물정에 밝고 냉소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순진함의 극치다. 트럼프가 독재자 애호가라는 온갖 말들이 있지만 그가, 하물며 위트코프 특사가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움직이는 사상이 얼마나 깊고 거의 신비주의적이기까지 한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트럼프는 이들을 상대하기에 이보다 더 부적합할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상업적 사고방식은 국가 운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는 일종의 자유주의적 이단이다.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함께 가야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시장은 자산이 자의적으로 압류되지 않는 것과 같은 특정 규칙에 의존하며, 민주주의 헌법이 이를 보호한다. 반대로 잘 규제된 시장이 만들어내는 자산을 소유한 중산층이 존재할 때 민주주의는 더 안정적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고소득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다. 아주 작거나(싱가포르), 천연자원의 축복을 받았거나(러시아), 혹은 둘 다인 경우(카타르)를 제외하면 말이다. 한국과 대만은 민주화 이전에 고소득 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 고소득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어떤 시점이 되면 이 두 가지 아이디어는 충돌한다. 2025년 들어 내 생각이 바뀐 지점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쌍둥이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매의 눈으로 감시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비즈니스가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태도다. 즉, 모든 사람은 협상 가능하며, 이른바 극단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네빌 체임벌린 전 영국 총리가 상업적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구의 수많은 이념적 적대자들이 존재하는 현대 세계를 생각할 때 이보다 더 나쁜 사고의 틀은 없을 것이다.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 러시아와의 두 번째 가스관 연결에 열을 올렸던 독일의 태도는 상업적 순진함의 전형이었다.

Ganesh, J. (2025, December 17). When business and democracy don’t mixThe Financial Times.

View more